의외의 남성 난임·불임 원인?... 생식력 흔든 5가지 요인
환경호르몬·열 노출·약물 등 일상 요인이 정자 질에 영향 WHO “가임기 인구 6명 중 1명 불임 경험”... 남성 요인도 주목

(그래픽=마더인사이트 제작)
남성 불임과 난임과 관련한 논의가 호르몬 문제를 넘어 생활환경 전반으로 넓어지고 있다. 플라스틱 화학물질, 열 노출, 구강 염증, 수면 부족, 일부 약물처럼 일상에서 접하기 쉬운 요인들이 정자 질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들이 이어지면서다.
20일 WHO와 미국 웨일코넬의대 자료에 따르면, 최근 연구들은 남성 생식 건강을 흔드는 요인으로 내분비교란물질과 생활 속 열 노출, 만성 염증, 수면 문제, 약물 영향을 함께 다루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불임이 전 세계 가임기 인구 6명 중 1명이 경험하는 문제라고 설명했고, 웨일코넬의학은 불임 사례에서 남성 요인이 약 50%를 차지한다고 소개했다.
더 큰 문제는 남성 생식력이 장기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40여 년 동안 전 세계 남성의 정자 수가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는 분석이 여러 차례 보고되면서 국제 학계의 경각심도 커졌다. 흡연과 음주, 비만이 정자 건강을 해친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지만 최근 연구들은 생활 속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요인들이 정자 수와 운동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가장 먼저 지목되는 요인은 생활 곳곳에 퍼진 내분비교란물질, 이른바 환경호르몬이다. 국제학술지 프론티어스 인 엔도크리놀로지(Frontiers in Endocrinology)가 2025년 발표한 종설은 플라스틱 가소제인 프탈레이트와 비스페놀A(BPA), 살충제, 제초제, 폴리염화바이페닐(PCB), 납·카드뮴 등 중금속을 최근 수십 년간 이어진 정자 질 저하의 주요 요인으로 다뤘다. 이들 물질은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 등 성호르몬의 작용을 흉내 내거나 방해하는 방식으로 정자 생성 과정을 흐트러뜨릴 수 있다.
환경호르몬 노출은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로 꼽힌다. 독성학 저널 리프로덕티브 톡시콜로지(Reproductive Toxicology)가 2025년 3월 게재한 리뷰는 프탈레이트와 중금속, 전자파 노출이 정자의 DNA와 후성유전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리뷰는 관련 물질에 대한 노출이 광범위하고 피하기 쉽지 않은 만큼 더 강한 규제 필요성을 언급했다. 앞선 종설은 이러한 노출이 태아기부터 성인기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봤으며 플라스틱 용기와 일회용품, 일부 화장품과 생활용품이 대표적인 노출 경로로 제시됐다.
◆ 노트북·휴대폰의 열…가까운 곳에서 정자를 위협
열 노출도 남성 생식력을 흔드는 뜻밖의 변수로 거론된다. 고환이 몸 밖에 위치한 것은 정상적인 정자 생성에 체온보다 2~4℃ 낮은 환경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온도 균형이 무너지면 정자는 손상될 수 있다. 남성 3만3234명을 분석한 다기관 연구가 2024년 헬리욘(Heliyon)에 실렸고, 연구는 지나친 고온뿐 아니라 극단적인 저온 역시 정자 질 저하와 연관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열 스트레스는 활성산소를 늘려 정자의 DNA를 손상시키고 정자 수와 운동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정자에 부담을 주는 열이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발생한다는 점이다. 학술지 더 에이징 메일(The Aging Male)이 2025년 실은 리뷰는 무릎 위에 올려둔 노트북과 주머니 속 휴대폰이 음낭 온도를 높이고 전자파를 방출해 정자 운동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시간 앉아 있는 습관, 사우나와 뜨거운 목욕, 몸에 꽉 끼는 속옷도 같은 방식으로 정자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런 열 손상이 노출을 줄이면 대체로 회복 가능한 일시적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무릎 위 노트북 사용을 피하고 시원한 환경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정자 건강 관리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잇몸병도 의외의 복병으로 꼽힌다. 입안 염증이 정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은 낯설지만, 학술지 BMC 오럴 헬스(BMC Oral Health)가 2025년 발표한 체계적 문헌고찰은 치주질환과 정자 질 사이의 연관성을 종합적으로 검토했다.
만성적인 잇몸 염증은 몸 전체에 저강도 염증 반응을 일으킬 수 있고, 이 과정은 호르몬 조절을 흐트러뜨리는 동시에 고환의 방어벽인 혈액-고환 장벽에도 영향을 줘 정자 생성을 방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심한 치주염 환자에게서 정자 운동성 저하가 관찰됐다는 임상 보고들도 축적돼 왔다.
구강 관리는 생식 건강과도 맞닿아 있는 생활 관리로 볼 수 있다. 유럽생식의학회(ESHRE) 등에서는 잇몸병이 임신에 걸리는 시간을 늘릴 수 있다는 연구가 발표되기도 했다. 규칙적인 양치와 치실 사용, 정기적인 치과 검진 같은 기본적인 구강 관리가 뜻밖에도 정자 건강과 연결될 수 있다는 뜻이다. 잇몸에서 피가 나거나 입 냄새가 지속된다면 단순한 구강 문제로만 넘기지 말아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는 이유다.
◆ 잠 부족한 남성…테스토스테론 리듬도 무너져
수면 부족 역시 정자 건강을 떨어뜨릴 수 있는 생활 요인이다. 테스토스테론은 하루 주기의 리듬에 따라 분비되는데, 불규칙한 수면과 만성 피로가 이 리듬을 흔들면 정자 생성 효율과 고환 기능도 함께 저하될 수 있다. 한 실험 연구는 수면 박탈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과 염증 지표를 높이고 테스토스테론을 낮춰 정자의 운동성, 생존율, 형태, 수를 모두 유의미하게 악화시킨다는 결과를 제시했다.
수면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정자 생성을 좌우하는 생리적 조건으로 평가된다. 세계질병부담(GBD) 데이터를 분석한 최근 연구에서도 수면 장애와 앉아서 생활하는 습관, 높은 심리적 스트레스가 정자 밀도 감소와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충분하고 규칙적인 수면을 확보하는 일은 피로 해소를 넘어 생식 건강 관리의 일부라는 의미다.

무심코 복용하는 약도 남성 생식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웨일코넬의대는 전립선비대증 치료에 쓰이는 알파차단제, 오피오이드 계열 진통제 등 다양한 약물이 남성 생식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과 유럽의 대규모 약물 부작용 데이터베이스인 FAERS와 유드라비질런스(EudraVigilance)를 분석한 2025년 연구는 약물유발 남성 불임을 별도 주제로 다루며 관련 위험을 정량적으로 살폈다.
약물과 남성 불임의 연관성은 임신을 준비하는 남성에게 특히 중요한 확인 지점이다. 해당 연구가 인용한 GBD 통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15~49세 남성 약 5500만 명이 불임 진단을 받았고, 이는 1990년과 비교해 74.66% 증가한 수치다. 복용 중인 약이 있다면 임신을 준비하기 전 전문의와 상담해 약물 조정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다만 임의로 약을 중단하기보다 의학적 판단을 거치는 과정이 우선돼야 한다.
◆ 검사 전엔 모르기에 부부가 함께 확인해야
남성 불임과 난임은 겉으로 뚜렷하게 드러나는 증상이 없어 검사를 받기 전까지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환경호르몬 노출, 열 자극, 구강 염증, 수면 부족, 약물 영향 등 상당수 요인이 생활습관 교정과 의학적 확인을 통해 관리될 수 있다고 본다. 정자가 새로 만들어져 성숙하기까지는 약 3개월이 걸리는 만큼, 열 노출과 유해물질을 줄이고 수면과 구강 건강을 함께 관리하면 몇 달 안에 정자 상태가 달라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편 임신이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 원인을 한쪽에서만 찾는 접근은 한계가 있다. 최근 연구 흐름은 정자 자체의 문제만이 아니라 생활환경과 전신 건강이 함께 작용하는 문제로 다루고 있다. 부부가 함께 검진을 받고 남성의 생식 건강까지 확인하는 일이 회복의 출발점으로 강조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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