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후 다리 들고 있어야 한다? 임신 준비, 자세보다 중요한 건

(사진=마더인사이트/챗gpt 제작)
임신을 준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성관계가 끝난 뒤 한동안 누워 있거나 엉덩이 아래에 베개를 받치면 임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이야기가 꾸준히 나온다. 하지만 현재까지 나온 생식의학 자료를 종합하면 자연임신에서 특정 자세나 ‘사후 안정’이 임신율을 높인다는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오히려 임신 가능성을 좌우하는 핵심은 배란 시기와 가임기 동안의 성관계 빈도에 더 가깝다.
미국생식의학회(ASRM)의 ‘자연임신 최적화’ 위원회 의견에 따르면, 정자는 사정 직후 매우 빠른 속도로 여성 생식기관을 이동한다. ASRM은 정자가 자궁경부에 들어간 뒤 난관에서 발견되기까지 15분이 채 걸리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 연구에서는 정자 크기와 비슷한 표지 입자가 질 후방에 놓인 뒤 불과 2분 만에 난관까지 이동한 사례도 확인됐다.
이 같은 이동은 단순히 중력에 의존하지 않는다. 여성 생식기관의 근육 수축과 자궁의 연동운동, 자궁경부 점액 등이 정자 이동에 함께 관여하기 때문이다. 신시내티대 의과대학 자료에서도 정자가 자궁경부를 통과해 이동하며 일부는 사정 뒤 약 5분 만에 난관에 도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 “흘러나오면 실패?”…자연임신에서는 근거 없다
성관계 뒤 정액 일부가 질 밖으로 흘러나오는 모습 때문에 임신에 필요한 정자가 함께 빠져나간다고 걱정하기 쉽다. 그러나 이미 일부 정자는 사정 직후부터 자궁경부를 향해 이동하기 시작하며 사후에 특정 자세를 유지해야만 이 과정이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ASRM은 성관계 자세가 자연임신 가능성에 영향을 준다는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사정 뒤 등을 대고 누워 있거나 골반을 높이는 행동 역시 임신 가능성을 높인다는 과학적 근거가 확인되지 않았다. 정자는 성관계 자세와 관계없이 사정 뒤 수초 내 자궁경관에서 발견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여성의 오르가슴도 비슷하다. 자궁과 생식기관의 수축으로 정자 이동을 도울 가능성은 있지만 실제 임신율을 높인다는 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 특정 성관계 자세가 태아의 성별을 결정한다는 주장에도 설득력 있는 근거가 없다.
다만 자궁내인공수정(IUI)은 자연임신과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2009년 네덜란드에서 391쌍을 대상으로 진행한 무작위 대조시험에서는 IUI 직후 15분간 누워 있던 여성의 지속 임신율이 27%로 즉시 움직인 여성의 18%보다 높았다. 출산율도 각각 27%, 17%로 차이가 나타났다.
그러나 이 결과를 일반적인 성관계 뒤의 행동으로 그대로 확대할 수는 없다. IUI는 처리된 정자를 카테터를 이용해 직접 자궁 안에 주입하는 시술로 자연임신과 과정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당시 연구를 소개한 자료에서도 이 연구만으로 성관계 후 누워 있는 행동이 자연임신 확률을 얼마나 높이는지는 판단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 자세보다 중요한 ‘6일’…배란 전 2일이 핵심
자연임신을 준비할 때 더욱 주목해야 할 요소는 가임기다. ASRM은 가임기를 배란일을 마지막 날로 하는 6일간으로 정의한다. 임신 가능성은 이 기간 중에서도 배란 직전 2일에 가장 높은 것으로 관찰됐다. 다른 연구에서는 배란 하루 전 성관계에서 임신 가능성이 가장 높았고 배란 당일부터는 감소하기 시작했다.
성관계 횟수도 중요하다. ASRM은 가임기 동안 1~2일 간격으로 성관계를 가질 때 임신 효율이 가장 높다고 설명한다. 매일 성관계를 갖더라도 임신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근거는 없다. 가임기 중 하루 간격이나 3일 간격으로 성관계를 가진 경우에도 임신 가능성은 비교적 비슷했지만 가임기에 단 한 차례만 성관계를 가진 경우에는 가능성이 가장 낮았다.
‘잦은 사정이 정자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인식도 반드시 맞는 것은 아니다. 약 1만건의 정액 표본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정상 정액을 가진 남성의 경우 매일 사정해도 정자 농도와 운동성이 정상 범위에 머물렀다. 반대로 10일 이상 지나치게 긴 금욕 기간을 두면 일부 정액 지표가 나빠질 수 있다고 ASRM은 설명했다.
배란 예측 앱을 맹신하는 것도 주의가 필요하다. 949명을 대상으로 소변 황체형성호르몬(LH) 검사와 여러 달력형 앱을 비교한 연구에서는 배란일을 맞힌 앱의 최고 정확도가 21%에 그쳤다. 생리 주기가 규칙적이라고 느끼는 여성도 실제 배란 시점은 주기마다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배란테스트기는 소변 속 LH 증가를 확인해 배란 시점을 추정하는 방식이다. LH 급증 뒤 배란은 2일 안에 일어날 수 있으며 ASRM은 배란측정기 사용이 임신까지 걸리는 시간을 줄인다는 무작위 연구 결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자궁경부 점액이 맑고 미끄럽게 변하는 것도 가임기를 파악하는 한 방법으로 제시된다.
생활습관도 함께 살펴야 한다. ASRM은 임신을 준비하는 여성에게 신경관 결손 위험을 낮추기 위해 하루 400㎍ 이상의 엽산을 섭취하도록 권고한다. 흡연은 여성의 난임 위험 증가와 연관됐으며 고용량 카페인 섭취와 과도한 음주 역시 임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피하거나 줄이는 것이 권고된다.
임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한 가지 행동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 쉽다. 그러나 현재 근거에서 자연임신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은 관계 뒤 몇 분을 어떤 자세로 보내느냐가 아니다. 정자는 생각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여성 생식기관은 그 이동을 돕는 자체적인 기전을 갖고 있다. 골반을 높이는 ‘15분’보다 배란 전후의 6일을 파악하고 그 기간에 규칙적으로 성관계를 갖는 것이 현재 생식의학이 뒷받침하는 접근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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